어째서 에서는 언약 백성이면서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는가? 무엇이 그를 실패케 한 문제였나?
1. 그는 상속에 대한 권한을 가볍게 여겼다.
에서에게는 영원하고 영적인 유산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쓸모없이 보였고 그것을 가볍고 경솔하게 취급했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항상 우리가 얻을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2. 그는 영원한 유업고 순간적인 행복을 맞바꾸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지켜내기 위해 잠시의 배고픔을 참아내는 인내가 없었다. 목숨을 잃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축복과 영원한 유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 지극히 현세적이고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유업을 바라보고 그 유업을 얻기 위한 자녀로서의 순종을 배우고 성품을 연단하고 믿음이 자라가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깊은 묵상이 필요하고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나의 영원한 유업을 현세적이고 순간적인 가치를 위해 맞바꾸는 어리석고 죄악된 일을 해서는 안된다.
3. 그는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불순종까지 갔다.
에서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 백성의 축복과 영적인 기업을 멸시하고 경홀히 여길 때 그래서 오히려 현세적이고 감감적이고 즉흥적인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회개의 은혜를 주시지 않고 그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자신의 선택을 따라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다. 회개는 마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만큼 회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내일로 순종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에서처럼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영원한 완악함에 떨어질 수도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C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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