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는 바리새인과 유대인, 즉 종교인을 상징하는 비유로서,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찾으실 때 열매없음을 보시고 저주하시는, 종교인들에 대한 ‘영원한 저주’를 선포하신 말씀으로..
모든 세대의 “종교인 같은,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무서운 경고라고 생각된다.
언제 어디서 요구하실지 알 수 없는, 예수님의 때에 항상 준비하는 신앙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신다.
이를 위해서는, 갈고 닦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마음은 ‘순종의 핵심’일 것이며… 순종은 절대의 믿음과 경외함으로부터 얻게 된다.
절대적 신앙의 결과는 ‘어떤 상황’에도 나타나는 ‘순종’이기도 하다. 따라서, 순종은 변화의 지름길이며 동시에 좁은 길이며, 순종 곧 지속적인‘자기비움’안에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능할 것이다.
순종의 좁은 길이란, 끊임없는 ‘자기 비움’을 의미하며, 이 자기 비움은, 말씀의 능력을 힘입을 때 가능하다.
말씀을 붙드는 힘이 곧 말씀에 붙잡히는 능력이며, 영적 성숙을 갈망하는 그리스도 인들의 자기 훈련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말씀은 ‘적당히’ 라는 개념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명령이므로 우리에게도‘절대의 신앙’을 요구하신다.
이만하면… 또는 이만큼의 봉사나 헌신이라면… 말씀의 감동과 은혜의 느낌이나 감정에 머물러 있다면…
생명의 말씀을 가장 깊은 내면으로, 삶 속으로 가져가 씨름하지 않는다면… 복음의 능력과 약속은, 강렬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은 ‘내면을 다루시는’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떠는 자신을 끌고 얍복강 나루로 향했던 야곱처럼,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하나님께 그러한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붙잡고 늘어져 떼쓰는 집요한, 절대적인 믿음이라야 우리는 종교의 탈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불구의 몸이 되어 얍복강을 벗어 났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자신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로 변모되었다.
타성에 젖은 쳇바퀴 신앙, 종교적 습관을 벗어 버리고 빠져 나와야 한다. 새로운 야곱의 되어….
율법인가… 복음인가…? 나의 신앙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 영원한 저주.. 아니면 영원한 생명인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풀어 나가야 할 단 하나의 과제이며.. 단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새로운 야곱을 만드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곳… 옛 자아가 숨어 있는 곳.. 상처와 아픔, 거짓과 위선.. 교만과 기만..이 숨 죽이고 있는 어두 캄캄한 내면으로..
새롭게 빚어 영원히 함께 하며, 찬양 받으시려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시고 계신 그분께,,, 날마다…… 끊임없이.,,,, 가까이 다가가는 자신과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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