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론 이야기

 

 

제목"예수님이 내 신앙의 표준인가?"2023-03-03 11:16
작성자 Level 9

2001년도 8월에 고 옥한흠 목사님이 교회갱신 협의회 영성 수련회에서 폐회 예배 설교를 하셨는데 그 제목이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인 즉은 한국교회가 밑바닥을 치게 된 것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신앙 표준을 너무 낮게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본보기로 삼았는데, 오늘 날 교회는 예수님을 우리 신앙의 기준과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고 나서 먼 훗날 예수님같은 부활 육체를 입고, 예수님처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만, 정작 지금 이 땅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내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내가 자라가야 할 영적인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캐톨릭 교회에서 “성자”라는 칭호를 얻는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 외에 우리 일반 성도들이 감히 예수님을 내 신앙의 목표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주제넘고 외람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고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성도가 고난 중에서도 인내해야 함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군대의 훈련조교처럼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이심으로 우리가 그분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려고 앞서서 고난받는 삶을 살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인격과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닮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신앙 생활 전반에서 그분을 기준으로 삼고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3-15).

 

많은 단어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우리가 자라가야 하는 신앙의 기준 또는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적인 성숙함에 이르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사 속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와 동일한 연약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과 유혹을 받으며 사셨지만 한번도 죄를 짓지 않으시고 온전히 순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예수님이 나와 똑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2000년 전에 유대 땅을 사셨다는 관점으로 복음서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 분이 얼마나 나와 가까운 분인지를 물씬 물씬 느끼게 됩니다. 우리와 동일한 육체적인 한계를 가지셨고, 우리와 동일한 정신적 감정적인 한계를 가지셨고, 질병과 죽음의 세력 속에까지 우리를 위해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그분의 "형제들" 이라고 까지 불렀습니다 (히 2:17). 그만큼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지고 이 땅을 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제한된 육체를 가지고 사시면서 그 분은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가시고 사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하고 설교했고, 요한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제한없이) 주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위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새벽 미명에, 또는 사역 중에 한적한 곳으로 피하셔서, 그리고 때로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표가 없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태는 그 현상이 전에 없이 현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되어 있다는 생각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굳이 철저하게 회개하며 더 성숙한 신앙생활로 나 자신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전한 헌신과 결단"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구태의연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이 예수를 너무 지나치게 믿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요구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 는 명령과 함께 우리에게 상당한 수준의 온전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성격에 대해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고 했고(고후 10:6),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을 생각하라..." (빌 4:8) 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 얼마나 가까이 온전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까? 표준을 낮추지 말고 예수님을 내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C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