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제목"가는 교회 섬기는 교회" (2) - 사고의 전환2022-02-18 11:34
작성자 Level 9

[2017년 1월에 이전 홈페이지 <목양칼럼>에 올렸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늘 사람이 주일 날 교회에 와야 한다고만 생각을 합니다.

사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잃은 영혼을 찾아오는 한 해"하고 정했을 때, 우리는 주로 "한 잃은 영혼을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 목장 모임에 데리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잃은 영혼이 우리에게 오기를 기도했고 그렇게 권면을 하고 그렇게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인 사고의 변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잃은 영혼"이 불신자이든 가나안 성도이든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목회자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때로는 교회의 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교회에 회의를 가지고 있고 목회자에게 시험이 든 사람이 일반 성도들처럼 주일 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적어도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분들을 붙잡고 "잃은 영혼"이라 부르면서 자꾸만 "교회에 가자"고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고의 전환은 단순히 그들을 교회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맞춤형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이 아니라 월요일이 좋으면 월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낮이 아니라 밤이 좋으면 밤에 예배를 드리고, 교회가 아니라 집이나 커피샵이 좋으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성경공부나 성경읽기나 기도로 섬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배를 타협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온전한 예배를 드릴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각 사람에 맞는 모습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도록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꼭 같은 상황의 예는 아닐 수 있지만 유다 왕국의 4대 왕이었던 여호사밧은 그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교육사업을 하였는데 방백들과 레위인들을 유다의 여러 성읍에 보내어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한 것입니다 (대하 17:7-9). 일반적으로는 백성들이 성전에 오든지 어느 곳에 와서 배워야 할 율법을 사람을 각 동네에 파송해서 맞춤형 눈높이 율법 교육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백성들을 가르치고 치유하셨을 뿐 아니라 70명의 제자들은 둘씩 이스라엘의 각 동네와 성읍으로 보내셔서 병자들을 고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눅 10:1-9). 일종의 "가는 교회"의 훈련을 시키신 것이지요.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가는 교회"의 가장 실제적인 예는 아마 여러 가정교회로 구성되어 있던 예루살렘 초대교회일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오기를 기다렸던 구약의 "오는 교회" 또는 "기다리는 교회"의 모델과는 달리, 신약의 초대교회는 "가는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해서 가도록 명령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자 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억지로 기도록 하셨지만 (행 8:1-5), 원래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그 성격상 세상을 향해서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오도록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선교사만 파송하는 교회가 아니라, 각 성도 자신이 세상 속으로 들어 가서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어 교회가 되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였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교회의 사도성"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각 성도는, "세상으로 보냄받은 존재"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