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삶의 모든 것 이었던 바리새인들에게 생명과 부활의 복음은 그저 생소 하기만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온 율법을 묶어 완성할 새 계명인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곧 이어 비유가 아닌, 말씀으로…
“다윗이 내 주” 라고 불렀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윗의 후손이 될수 있는가… 라는 애매한 질문을 던지시며 정면도전을 하신다.
생명의 법에 맞설 수 있는 힘도, 답도 없는 율법… 성령의 감동없이, 곧 ‘영의 조명’이 없이는 절대 해석 불가한 말씀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린 바리새인들…..
과거와 미래의 역사를 시간을 초월하여 이루어 가시는 시간과 영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은, 시간의 존재인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이미 성취되어 있는 영원의 나라…. 제한된 시간 속에 사는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 이해 불가한 영의 신비라 할 수 있겠다.
영이신 말씀의 세계와, 법이 다스리는 땅의 세상은 오직 “믿음”이라는 “영의 견고한 다리” 로만 연결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늘 하나님만 묵상하며 살았던 다윗은, 외롭고 처절한 고난의 시기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매 순간 소망안에서 인내하며, 한 가닥 살 길인, 믿음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영적인 만남을 이루어갔다.
믿음은 영원을 보는 눈이다.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그분을 믿음은 볼 수 있으며…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을 때 강화된다.
그 분을 향한 소망 안에서 우리는 기쁨으로 영혼의 닻을 내리고 방향을 잡으며 항해한다.
외로움과 고난의 현실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소망의 닻으로 삼은 다윗에게 있어서, 현실과 미래는… 지금 여기서의 삶을 가능케 했으며 나아가 고난속에 자리잡은 미래의 축복을 누리며 그분과 함께 영적 고원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의 믿음 안에서 늘 현실이 되었고 약속을 살아가는 지고한 영성으로 삶의 터를 굳혀 나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먼 훗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은, 정차 오실 미래의 주님이 아닌, 지금 이 삶의 자리에서 삶을 주도하시며 인도하시는 ‘언제나 현존하시는 주님’이셨다. 후손으로 오시지만, 자신의 삶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셨다.
우리는 곧 다시 오실 그 예수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며 찬양했던, 다윗의 영성에 도전 받아야 한다.
복음 안에 감추어진 영원한 생명… 우리 믿음이 이 생명에 닿을때, 성령께서는 영원한 나라의 약속들을 지금 여기로.. 끌어 오셔서 거기에 삶의 터전을 잡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미래와 현실이 하나되어, 삶을 풍요케 하는 소망과 믿음… 우리는 영원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약속을 붙잡고 떠나온 영원의 나라… 본향을 향해… 소망의 닻을 내리고 성령의 바람을 타고 노를 저어야 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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