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거짓됨과 악함을 신랄하게 꾸짖으시고 저주하신 후, 제자들에게‘자신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며‘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고 당부를 하신다.
하지만 이 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왜‘먼 훗날 내가 다시 오리라’고 하시지 않고‘어느 날, 어느 때, 혹은 어느 시각(영어성경)' 이라고 표현하심으로 긴박감, 경종의 말씀으로 일러 주셨을까….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서막이며,‘재림’을 통해 완성됨을 가르쳐 주심으로서, 제자들에게, 또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초점을 자신의 “재림”에 맞추고 준비하며 살도록 일깨워 주신 말씀이라 생각된다.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의 만남과, 그분의 재림 사이에서 각자의 인생의 길을 걸으며 시간의 흐름에 삶을 실은 우리들…. 그 간격은, 말씀을 살아가려는 몸부림과 끊임없는 삶의 재조명과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으로 메꾸어 가야 할 것이다.
‘언제, 어느 때, 또는 어느 시각'이 아닌.., 지금 당장이라도 주님 오심에‘준비되어 있는’삶과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언제? 지금 이 순간에? 내일? 오시려나? 하다가는 길을 잃게 된다. 언젠가는 마지막 초침을 치며 끝나 버릴 시간들… 지금은 누가 보아도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지금, 오늘 이 순간…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 가고 있는 하나님의 시간들…. 그 시간들의 흐름속에서…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가고 있는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뜻에 맞추어 일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때에 우리의 삶과 때를…. 그분의 말씀들이 우리 삶을 휘젓고 만들어낸 삶의 열매들을 그분의 때에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재림을 기다리라는 신랑의 신실한 약속과 당부의‘ 사랑의 약조’….. 나 자신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 ‘데스티니’가 되어야 한다.
내 삶의‘ 데스티니’를 날마다‘예수님의 재림’에 맞추어 정교하게 조율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분께 가까이 다가간다. 그분의 찬란한 영광의 빛 안에서… 우리 자신과 세상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대학 3년 어느날, 첫 강의 시간에 맞추어 이른 아침 캠퍼스 교정을 걸어 가고 있던 중…., 문득, 홀연히… '인간은 왜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으며…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과 의혹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치 때를 만난 것처럼..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꼬리를 물고 올라 왔다.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이 질문은 그치지 않았고… 점점 더 깊어지면서 급기야는 심적인 방황을 하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그로 십여년이 지난 어느 날 홀연히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내면의 방황은 끝이 나게 되었고.. 자신의 존재와 목적에 대한 오랜 동안의 의혹들은 예수님 안에서 답을 얻게 되었다.
의혹들로 가득차 있던 마음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으로 주체할 수 없었고,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은 나날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예수님 안에 품어져 있는 또 다른, 본래의 내 자신을 바라 보면서… 신앙의 삶이란, 죄악 이전의 참 나를 더듬어 되찾아가는 믿음의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로서 오랫동안 찾아 헤멨던 자신의 존재와 삶의‘데스티니’를 찾게 되었다.
오늘도 예수님을 향해 마음과 삶을 조율하며 사랑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진정한 신부로,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해 순종의 발걸음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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