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필

 

 

제목“단순함 속에서 만난 하나님” [23년 9월]2023-09-06 11:50
작성자 Level 9

긴 여름을 끝내면서 아내의 치료차 몬타나의 어느 산골을 다녀 왔다. 동네 전체의 인구가 176명이라는 어느 조그마한 광산촌, 그 곳 동굴 근처에서 열흘을 머물며 본 풍경들은 그야말로 1960년대 한국 시골의 모습 그대로였다.

 

큰 산을 앞에 놓고 남향으로 지어진 몇 채의 캐빈(cabin) 앞에 넓다란 마당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열 마리 남짓한 닭들과 거위들이 떼지어 자유분망하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꽥꽥거리는 네 마리의 거위들은 하는 일 없이 몰려다니며 부지런히 모이를 찾는 닭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캐빈이 지어진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방목하는 대 여섯 마리의 염소들이 있었고 한 마리 돼지도 키우고 있는, 그야말로 '동물 농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골, 아니 산골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평화롭기 그지 없는 그 산골 마을에서 어느 분의 소개로 60 중반의 미국 목사님을 만났다. 우리 숙소에서 아마 20-30분은 더 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그 목사님의 집은 산속의 조그마한 집이었다.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시내가 그 목사님 집 뒤의 언덕 아래에서는 제법 깊어져서 수영을 할 만한 꽤 크고 넓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우리 부부를 그곳에 데려가 큰 바위에 앉게 하고 땀에 배인 발을 씻어 주며 기도를 해 준 그 목사님은 마치 성경이 기록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헤어 스타일과 검붉케 탄 얼굴의 구레나룻 수염,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그의 거치른 모습은, 허리에 짐승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는 세례 요한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세족식을 마치고 나서 그는 계곡 위의 언덕에 있는 자신의 집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6-7년 전에 이사온 이 집에는 아직도 전기와 개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태양광 판을 설치해서 전등과 가장 기본적인 가전 제품은 쓰지만, 에어컨도 없고 히터도 없다. 여름에는 문을 열어 놓고 지내고 겨울에는 장작을 태우는 난로로 살아간다.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의 삶이다.

 

이 목사님은 자신의 이 '단순한 삶'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전의 삶은 너무나 복잡했고,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는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은 사실상 그렇게 많은 것들이 아닌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부수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붙잡혀서 정작 요긴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아내와 함께 이곳으로 이사하고 나서 기도에 집중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이른 아침의 신선한 물소리는 물론이고, 석양이 내리는 계곡과 흘러 내리는 시내를 바라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과 교제한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너무나 바쁘고 복잡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 하나님의 모습과 음성들이 여기서는 너무나 확연하게 보이고 들린다는 것이다. 마치 몬타나 산골의 밤 하늘에 보이는 그 수 많은 별들이, 사실은 그 이전에도 늘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미처 보지 못하고 살아 왔듯이 말이다.

 

좀 더 빨라야 하고, 좀 더 편리해야 하고, 좀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조금만 빈 시간이 있으면 전화기를 펼쳐 뉴스를 읽고 유튜브를 보며 어떻게든 시간을 아껴 무엇을 더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던 나로서는 참으로 생경 맞은 모습이었다.

 

그는 이 산골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낮에는 동네로 내려가 일을 하고 교인들을 목회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기도와 말씀 묵상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삶에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였다. 그는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다 그 영원한 샘의 근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세련되고 편리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음성에는 세례 요한과 같은 영적인 힘이 있었고 그의 모습에는 표현하지 못할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것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다 빠르고 편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창조주가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또한 장래에 내 삶을 결산하실 그분이 내 삶의 중심에 계셔서, 그분과 좀 더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으면, 그 나머지는 다 이차적이다. 좀 더 깊이 그분을 알고 남은 날들을 그분과 끝까지 동행하다가 천국으로 내 삶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인생의 복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진실로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