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론 이야기

 

 

제목"죄에 대한 죽음"2024-10-18 11:46
작성자 Level 9

로마서 6장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2절)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때로는 성경의 문맥에 따라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로마서 6장에서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은 <죄의 왕권>, <죄의 지배>에서 끊어졌다는 의미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16절) 하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죄를 범했을 때 우리 온 인류는 죄의 종이 되고 죄는 우리 모두 위에 왕권을 행사하는 거대한 세력이 되고 말았다.

 

아담의 범죄 이후 죄와 우리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not able not to sin)" 라고 정의한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는 죄의 왕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아주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육체의 정욕이든, 아주 고상하고 점잖은 마음의 숨은 교만이든, 죄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왕권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다스려왔다. (창 6:5; 렘 17:9-10; 막 7:20-23)

 

그러나 로마서 6장이 가르치는 진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분과 연합된 우리 성도들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세력에 대해서 한번으로 영원히 죽고 그 죄의 왕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노예가 죽을 때 마침내 포악한 주인의 지배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되고, 주인은 아무리 힘이 있어도 더 이상 그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없듯이, 죄는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우리에게 왕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죄짓기를 강요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어거스틴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able not to sin)" 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자의적으로 선택함으로 죄를 짓는 것이지 죄가 내게 왕노릇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이제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에 끌려서 고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얼마든지 죄를 이기고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에게 다시 왕권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죄의 세력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왕도 아니고 우리의 주인도 아니다. 아니 사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왕노릇 하는 사람들이다. 원칙적으로는 죄가 우리를 피해 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또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완전주의(perfectionism)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죄의 왕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분의 은혜와 능력 안에 거하는 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죄에 대해서 죽었다!" "죄는 나에 대한 왕권을 잃었다!"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이제는 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20241015 C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