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사건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하나님 견해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기에 절대로 죄를 용납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마다 그것에 합당한 형벌을 받음으로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놓치고 있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 하는 율법의 조항을 넘어서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율법을 통해 죄인을 정죄하시고 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은혜아래 나아와 죄인이 구원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셨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그 여인을 돌로 치기 전에 먼저 그 율법을 적용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 그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살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동일한 죄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율법에 따라 정죄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 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형벌을 집행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묻은 손으로 집행한 그 형벌의 저주가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이며 훗날 하나님은 똑같은 잣대로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이 있다면 한 개인의 죄를 대면할 때 그의 연약함을 탓하고 죄악됨을 손가락질 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연약함과 패역함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같은 죄악이 내 안에도 내 삶에도 존재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 전체의 죄악인 것을 인식하고, 그 연약한 사람을 부등켜 안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곧 그분이 그 여인의 죄를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이 함께 나타난 현장이었다. 하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면서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오늘도 그 십자가의 놀라우신 사랑을 기억하고, 나 자신 죄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여전히 죄가운데 있는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주님의 자비와 긍휼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C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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