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한 죽음과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사실을 설명하고 나서 로마서 6장의 전반부는 이렇게 결론 짓는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어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자로 "여기라"는 것이다.
"여기라"는 이 명령은 "믿으라"는 것과는 또 다른 명령이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것은 주로 상당히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긴다"는 것은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그 사실대로 "행한다" 또는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배경 속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영적 현실을 내 실제 삶 속에서 그렇게 인정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직 없는데 그렇게 가정할 때 실제로 믿는대로 되어진다는 '적극적인 사고'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노부부가 은행에 100불 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여보, 은행에 100불 밖에 없지만 우리는 100만불이 있다고 여기고 삽시다" 하고 말한다면 사실은 없는데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영어로 'reckon' 또는 'consider' 라고 번역하고 있는 이 "여기라"는 단어는 그런 가정의 의미가 아니라 지금 현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실제로 되어진 일을 행동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친구로 지내던 커플이 결혼을 해서 부인이 아직도 예전처럼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가 이렇게 충고한다. "얘, 옛날엔 친구였지만 이제 결혼을 했으면 남편을 남편으로 여겨야지 아직도 야자하고 이름을 부르면 되겠니?"
여기서 "여긴다"는 의미는 눈으로 보기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여전히 대학교 친구처럼 보이지만 이제 엄연한 부부이기에 그 새로와진 신분을 인정하고 거기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기에는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고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고 죄의 충동이 있지만 영적인 현실과 신분으로 보면 엄연히 죄의 지배와 왕권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그 새로운 현실을 매일의 삶 속에서 인정하고 그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내게 일어난 그 영적인 현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 삶 속에서 실제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죄에 대한 승리를 누리는 한 방법이다. 우리는 과연 내가 죄의 세력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내 삶 속에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20241023 C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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