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할 이유가 많은 풍족하고 풍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들어가던 무렵에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얇은 플라피 디스크만 들어가는 컴퓨터를 쓰다가 드디어 20 메가 바이트 용량의 하드 드라이버가 있는 컴퓨터를 구입하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약 35년이 지난 지금은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전화기가, 그 때 컴퓨터 용량의 수 천 배가 넘는 수퍼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우리 시대가 이전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너무나 편리해져서 도무지 불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날 만큼 불만의 표출이 강한 시대도 없습니다. 최근에 경험하는 많은 총기 사건과 혐오 범죄의 배후에 있는 현대인의 공통적인 정서는 불만과 증오입니다. 환경에 대한 불평과 가족들에 대한 원망, 여러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미움입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감사할 조건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가장 감사를 잃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감사'(thank)라는 단어는 '생각'(think)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말처럼, 실제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감사의 마음을 결정 짓습니다. 사실 감사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 조건과 관계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주관적인 태도입니다.
부족하고 열악한 중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풍요롭고 풍족한 중에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는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달린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에 달려 있습니다.
내게 주신 이 환경과, 이 사람들과, 이 사건들 뒤에 계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믿음의 시금석'이 바로 우리의 '감사'입니다.
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밀려와도, 가장 사랑하는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때문에 (롬 8:32)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선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 성도는 (롬 8:28) 불평할 것이 없고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 조차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내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하지 못하면 불평과 원망이 입에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물이 동나거나 양식이 모자랄 때, 그들이 불만을 늘어 놓는 대상은 늘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이냐?" (출 17:7) 하는 것이 그들의 불만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내 영광과 이적을 보고서도 열 번씩이나 나를 시험하고 불순종했다"고 책망하셨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그들은 한 사람도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셨습니다. (민 14:22-23)
불평과 원망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의 표현이며, 감사와 찬양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 50: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삶에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엔돌핀이 나오게 하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행복 감성이 올라가며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무시로 감사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엡 5:20).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신뢰는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일입니다.
감사의 달 11월을 맞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를 제사로 올려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하며 축복합니다. (C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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